[서평] 구구단, 절대 외우지 마라 - 암기식 수학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원리로 깨치는 직관적 뇌 자극법
계산을 뛰어넘은 직관의 힘
몇 년 전, KBS '명견만리'에서 진행한 흥미로운 수학교육 실험을 보았습니다. 서울대 수학 전공 대학생들과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수능 미적분 문제로 대결을 펼쳤죠. 대학생들은 복잡한 공식을 동원해 정석대로 풀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초등학생들은 공식 하나 없이 그림을 그리며 문제의 본질을 꿰뚫었습니다. 결과는 서울대생 15분, 초등학생 단 5분. 계산을 넘어선 '직관의 힘'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시엔 신기한 방송으로만 넘겼지만, 아들이 부쩍 자라 숫자를 세고 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제가 겪었던 주입식 교육을 그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미적분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깨우치게 했던 조봉한 박사의 《구구단, 절대 외우지 마라》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AI) 전문가가 말하는 진짜 수학
이 책의 저자인 조봉한 박사는 시각적 수학 교육 프로그램인 '깨봉수학'의 창시자입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일반적인 교육학자가 아닌, 서울대를 거쳐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IT 및 AI 전문가입니다.
인공지능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는 그는 단언합니다. "단순 계산은 컴퓨터가 완벽하게 처리해 주는 시대입니다. 앞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수학적 현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시각적으로 포착해 내는 능력입니다."
십진법의 본질을 꿰뚫는 4단계 시각화 프로세스
이 책은 무작정 숫자를 외우는 대신, 이미지를 통해 거대 숫자의 곱셈까지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 헬로우 깨구단: 더해서 10이 되는 숫자의 짝꿍을 찾으며 십진법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익힙니다.
- 십 만들기: 곱하기 2와 5의 성질을 결합해 10을 가장 빠르게 유도합니다. 숫자를 단순 텍스트가 아닌 '도형의 면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 공간 이동 (텔레포트): 10, 100 같은 기준점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빈 공간을 도식화하여, 어른도 암산하기 힘든 복잡한 곱셈을 그림판 채우듯 풀어냅니다.
- 무한 확장: 앞서 다져놓은 시각적 덩어리 개념을 바탕으로, 세 자릿수 이상 큰 수들의 곱셈으로 유연하게 사고를 확장합니다.
수학을 포기했던 아빠가 추천하는 이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기보다, 복잡한 공식의 패턴만 지독하게 외워 답을 내는 방식에 길들여졌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공식을 암기한 탓에 고등학교 수능까지는 어찌어찌 버텨냈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마주한 고등 수학과 통계학 수업에서는 그 얄팍한 요령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근본 원리를 모르니 증명 문제를 쫓아가지 못했고, 결국 수학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들만큼은 텍스트에 갇힌 죽은 수학이 아니라, 세상을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살아있는 도구로서 수학을 즐겁게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연산 가이드북을 넘어, 아이의 뇌세포에 유연한 사고 체계를 심어주는 훌륭한 지침서입니다. 기계적인 문제 풀이 대신 수의 아름다운 규칙성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님들께 이 책을 적극 권합니다.